J와 잡담

집으로 가는 길에 J에게 전화를 했다.
며칠 전 온 연락을 받지 못한 게 기억났기 때문이다.

집 앞 지하철 역보다 두 정거장 먼저 내려 걷고 있었다.
J는 일을 마치고 예술의 전당 근처에 있다고 했다.
동네까지 삼십 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아직 식사 전이라면 저녁을 같이 먹자고 했다.
배가 많이 고픈 상태라 삽십 분이란 시간이 길게 느껴졌지만 근처에 오면 다시 연락해달라고 했다.

J와 저녁 약속을 잡으니 묶음 배송처럼 J와 함께 만나는 친구 H가 생각났다.
"H도 부를까?"
"어, 그래!"
"J랑 같이 저녁 먹을 건데 시간 되면 너도 같이 고고싱하자, 라고 말할게."
"그래 그래"

H는 '조금 일찍 말하지. 방금 밥 먹었는데' 라고 말했다.
J는 그럼 얼굴이라도 보러 와, 라고 이야기했다.
H는 배 부르다고 오늘은 그냥 둘이서 만나라며 귀찮아했다.

J는 갈치조림을 먹자고 했다.
J의 집과 우리집 딱 중간에 있는 식당이다.
얼마전 지인과 함께 온 곳인데 맛있고 사람도 많이 찾는 곳이랬다.
종종 여기에 올 때면 내가 생각났다고 이야기했다.
'맛있는 거 먹으니 어쩐지 네 얼굴이 떠오르더라고' 라는 사랑과 우정이 넘치는 내용은 아니었고 그냥 가까워서 생각났다고 말했다.

메뉴판을 보니 삼치구이가 먹고 싶었다.
J는 갈치조림이 먹고 싶은 눈치라 갈치조림을 시켰다.
갈치조림은 2인 이상만 주문할 수 있다.
J는 다음에 혼자 와서 임연수 구이를 먹어보라고 했다.
'다음에 오면 삼치구이를 먹어봐야지'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거듭 임연수를 추천하는 바람에 더욱 더 삼치구이가 먹고싶어졌다.
그나저나 임연수는 꼭 사람 이름 같아 그걸로 농담을 하려 했는데 농담을 하는 나 역시 재미없을 게 뻔해 그만두었다.

식사를 하며 J는 여자 이야기를 했다.
너무 긴 거 아니냐, 싶을 정도로 길게 했다.
J는 여자를 좋아한다(여자 안 좋아하는 이성애자 남자가 어디 있겠냐만은 모쪼록).

최근에 임경선 작가의 강연 영상에서 본 내용이 생각난다.
유희열과 임경선 작가가 이성에게 인기가 많은 사람에 대해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한다.
"남자에게 인기 많은 여성은 자기가 남자를 좋아하다는 걸 스스럼없이 표현한다' 는 이야기였다.

어리바리하고 어수룩하고 어설퍼 예능인이자 가수인 김종민을 떠오르게 하는 J는 그래서 비교적 여자를 자주 만나는 것 같다.
식사 자리에서는 최근에 만난 사람 이야기를 했는데 종종 그 사람이 생각난다고 했다.
연락을 해볼까, 물었다.
이미 정해놓고선 좀 더 용기를 보태기 위해 묻는 말이었다.

밥을 먹으니 졸음이 몰려왔다.
퍼져있고 싶어 J의 차에 올라탔다.
눕다시피 앞좌석에 늘어 앉으니 더더욱 잠이 왔다.

J는 '어디 가고 싶은 데 있어?' 물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인 집에 누워 과자를 먹고 싶었는데 어쩐지 바로 들어가기가 아쉽다는 생각도 들었다.
드라이브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씩 커졌다.
J는 선유도 공원 가서 차 한 잔 하자고 네이게이션을 찍으며 묻듯이 말했다.
좋다고 했다.

대방역 쯤 지나니 잠이 쏟아졌다.
아, 여기서 집에 다시 가자고 할까, 싶었는데 이미 늦은 것 같고.
일단 갔다 오자.

공원 주차장에 내리니 많이 추웠다.
강 앞이라 그런지 체감온도는 5도 이상 마이너스.
걸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나,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J는 여전히 여자 이야기를 했다.
여자 이야기를 하다가 선유도 공원 다리 난관에 서서 밑을 쳐다보며 무섭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나는 선유도 다리로 향하며 잠시 조깅을 했다.
J에게 달리는 폼이 어떠냐고 물었다.
귀엽다고 했다.
달리 말하면 '어설퍼' 다.
나 역시 J와 비슷하게 뭘 해도 어색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 쪽이다.
웃겨서 웃어도, 반가워서 인사를 해도 영혼 없이 지어내듯, 어색하다는 인상을 주는 모양이다.

돌아오는 길에는 더욱 무겁게 잠이 쏟아졌다.
집에 들어가면 바로 뻗을 것 같았다.
씻지도 않고 바로.
씻을 힘이 없을 정도로 잠이 왔다.

피곤하면 씻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혹은 왕왕 있다.
문득 궁금해져서 J에게 물었다.
'피곤하면 씻지 않고 잘 때 있지?'
아마 너도 그런 적 많을 거야, 예상하며 물었는데 J의 대답은 달랐다.

'그런 적 거의 없는데. 난 남아있는 온 힘을 다해 씻고 자. 양치하고 대충 얼굴에 물만 끼얹든지 간에.'
배워야겠다.
나도 지금 남아있는 온 힘을 다해 꼭 씻고 자야겠다고 미리 준비하며 잠들었다.
히터 바람 앞에 속수무책 눈꺼풀이 감겼다.

J가 집 근처에 내려주었다.
문을 닫으며 다음에 보자고 인사했다.
남아있는 온 힘을 다해 꼭 씻고 자려 했던 기억이 하나도 남아있지 않게 된 나는
옷도 제대로 걸어놓지 못한 채 바로 잠들었다.

코득코득 잡담

한병철 교수의 <피로사회>
이 책은 종각역 지하에 있던 반디앤루니스 서점에서 샀다.
졸업 후 디자인회사에서 인턴을 하던 때였으니 불과 삼 주 전 일이군, 하며 어린 척 해본다.

상수역으로 출퇴근하며 주로 책을 읽었다.
<달과 6펜스>, <길 위에서>를 읽었던 7호선의 조명과 공기가 선명하다.
나름 새로운 방식의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때니 '어떻게 살야야하는 건지' 고민이 많았다.
'하고 싶은 일, 할 수 있는 일, 해야하는 일' 그 어느 것도 명확하지 않아 흐릿했다.
<달과 6펜스>, <길 위에서>와 같은 책은 일탈에 가까운 자유를 꿈꾸게 했다.
무책임에 가까운 방종과 선택에 대한 모든 책임을 포함하는 자유를 헷갈리던 시기였다, 아마도.

얇으니까 금방 읽겠군, 지하철 안에서 읽으려고 샀던 책이 <피로사회> 였다.
제목처럼 적지 않은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느끼고 있던 터라 강하게 이끌린 모양이다.
막상 펼쳐보니 한 장 한 장 넘기기가 어려웠다.
이건 도대체 뭔 내용인지도 모르겠고 글자만 읽어나가는 기분이랄까(한글 공부하려고 산 책이 아니란 말이다!).
'얇으니까 금방 읽겠군. 왠지 공감갈 것 같으니 읽으며 위로받자' 라는 마음은 온데간데없고 자연스레 <피로사회>와 멀어지게 됐다.

다시 이 책을 집게 됐다.
이유인즉슨 '이렇게 지하철 안에서 스마트폰만 쳐다보며 시간을 죽이는 것도 참 좀비같군. 스마트폰 보고 있는 게 딱히 재미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멈출 수가 없는 거니. 하루 종일 컴퓨터만 보고 있어 가뜩이나 눈 아파 죽겠는데 여기서까지 눈을 혹사시킬 거냐! 건강이 우선이라는 놈이 허구한 날 라면만 먹고 어째 청개구리처럼 반대로만 겉돌고 있는 거냐고!' 라는 생각이 들어 다시 책 읽는 습관을 들이자고 결심했기 때문이다.

<피로사회>는 책이 작아 점퍼 주머니에 쏙 들어가는 게 편하게 들고 다니며 읽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책도 얇으니 왔다갔다하며 부담없이 금방 읽을 수 있을 것 같았고.
하하하, 삼 주 전 인턴 시절의 기억은 까맣게 잊고서 말이다.

삼 주가 지닜지만 여전히 내게는 쉽지 않은 책이다.
내게 책이란 유희다.
무언가를 더 얻고자 배우고자 책을 펼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취향과 재미를 쫓아 책을 택한다.
말랑말랑한 책들만 보다가 갑자기 철학책을 보려니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첫 챕터부터 이게 무슨 말이야, 하며 다음 문장으로 넘어갔다가 다시 앞문장으로 돌아오기 일쑤였다.

책에서는 최근의 사회를 긍정 과잉의 사회, 성과 사회라 말한다, 라고 쓰고 나니 아무래도 계속 포스팅을 잇기 위해선 다시 책을 읽으며 내용을 발췌해야할 것 같아 그만둔다(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고... 그럴 리가).

스스로 평가하기에 나는 그리 긍정적인 사람은 아닌 것 같다.
내 기준에 의하면 말이다.
다른 사람이 스스로를 평가하는 기준에 나를 대입하면 엄청나게 긍정적인 사람일 수도 있겠지만.
아니다, 어떤 면에서는 꽤나 긍정적이지.
누구나 그렇겠지만.
어쩐지 하나마나한 소리를 하고 있네.

내가 생각하는 하나마나한 소리 하나는 '가깝다면 가깝고 멀다면 멀 수 있는 거리인데요' 다.
'가까우면 가까운 거고 멀면 먼 거지.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냐!' 싶게 만드는 소리다.
'그냥 몇 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라고 말해주면 되는 거 아닐까, 하고 생각하게 만드는 소리다.
그러고 보니 가깝고 먼 것도 참 주관적인 판단이다.

모쪼록 나야말로 긍정 과잉에 사로잡힌 대표적인 사례가 아닐까 싶은 순간을 며칠 전 경험했다.
한 명의 모델이 카메라를 응시하는 사진을 이용해 디자인 시안을 만들어야 했다.
이차저차 텍스트 위치를 옮겨가며 작업을 진행했는데, 아무리 봐도 좋은 시안이라고 들이밀만 한 건 하나 뿐이었다.
그래도 조금 더 고민해보면 더 좋은 게 나올지 몰라, 하고 스스로를 족치며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네다섯 시간 동안 스스로를 착취하고 난 후 최종으로 결정한 시안은 내가 이십 분만에 얹힌 것이었다.
긍정 과잉으로 허비한 네 시간 남짓의 시간은 무엇일까, 하며 세상 다 부질없다, 라는 자세를 취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의미 없는 시간은 아니었다.
후에 이와 비슷한 상황을 만났을 때 전보다 빠르게 판단할 수 있는 경험적 기준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라고 다시 한 번 긍정하고.

며친 전 경험은 긍정 과잉이라기 보다는 요령 부족에 더 가까울 것이다.
요령은 빠른 판단에서 나오고 빠른 판단은 많은 경험과 연습에서 나온다.
처음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쓸 때 많은 사람들이 질보다는 양을 강조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할 것이다.

시간은 정해져있는데 스스로가 정한 결과에 대한 높은 기준으로 스스로를 족치는 사람이다.
'이거 괜찮아?' 묻고선 상대가 '어, 좋은데!' 라고 반응하면 속으로 '이게 좋다고...?' 반신반의하는 쪽이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으니 이건 긍정 과잉도, 요령 부족도 아닌,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건가.
여하튼 상대에게 관대하고 스스로에겐 엄격한 현대 사회의 셀프 착취자, 인 것 같다며.

쓰다보니 자꾸 삼천포로 빠진다.
침대에 누워 키판을 두드리며 의식의 흐름을 따르고 있다.
때마침 비트 세대에 관한 만화책을 읽고 있어 비트족을 따라 방 안에서 담배와 술을 탐닉하며 키보드를 두드린다, 면 집에서 쫓겨나겠지.
모쪼록 의식의 흐름에 따라 난 이만 포스팅을 마무리하려한다(제대로 마무리하기가 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고... 그럴 리가).

라라랜드 OST 사면 하루에 이천 번씩 들을 줄 알았는데 몇 번 듣고 나니 아웃 오브 안중이다.
아, 안간의 소유욕이란 무엇인가... 라며 회의하는 인간인 척해본다(회의는 회의실에서, 라는 재미없는 개그는 보너스).



아이튠즈에서 휴대폰을 인식하지 못해 몇 달째 같은 노래만 반복이라 이동하면서 음악을 잘 듣지 않았다.
최근에 다시 음악을 듣기 시작했는데, 이것 참 플레이 리스트만 봐도 '지겹군'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근데 또 들으면 오랜만이라 예상처럼 지겹지 않고 좋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질리고 마는 건 없을 거야, 아마.

나이트 무브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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