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충전 잡담


한 달 넘게 루즈벨트만 듣는다.
출퇴근 길에 들으면 기분이 나아진다.
피로엔 우루사, 스트레스 해소에는 당충전, 아니 전자(음악)충전(이라고 쓰니 왠지 오그라드는군). 

종종 좋아하는 음악이 뭐냐고 물어올 때가 있는데 최근 내 대답은 '전기 많이 쓰는 음악' 이다.
이 소리 저 소리가 왔다리 갔다리 치고 빠지고 동분서주 질서있게 한 곡으로 묶이는 게 재밌다.
언젠가부터 가사 듣는 데 관심이 사라졌고 리듬이나 분위기로 음악을 택하는 취향이 강해졌다.
루즈벨트의 나이트 무브 중 2분대에서 고조 및 변화하는 부분은 한두 달 내 경험한 콘텐츠 중 가장 큰 쾌감을 줬다. 

음원으로만 들었을 때는 단순히 신나고 세련된 전자음악으로 생각했다.
일주일 전에 멍 때리다가 문득 라이브하는 게 궁금해 유튜브로 찾아봤다. 
디제이 장비 앞에 서 동글동글한 버튼 같은 거 돌리는 모습을 상상했는데, 악기를 매고 연주를 한다.
음, 능력자군. 멋있다. 기타 좀 배워놓을 걸.

라이브 영상을 본 후에는 일렉트로닉을 가미한 디스코 록이라는 인상에 더 가까워졌다.
무엇보다 하나도 안 신날 것 같고, 밖에도 안 나가고 방에서 컴퓨터만 할 것 같은 사람이 신나는 음악을 만드니 더 좋아졌다.
(세션으로 보이는 드러머가 이질적으로 느껴질 만큼 가장 신나보이는 것도 함정)

최근에 모 분이 O셔리를 보고 "실제로는 노잼인 사람이 이런 걸 만들어서 더 재밌게 느껴진다' 고 이야기했다.
이 말을 듣고서 공감한다거나 정곡을 찔렸다기보단 그냥 웃긴 기분이 들어 막 웃었다.
특별히 좋게도 나쁘게도 들리지 않았는데, '음, 나 역시 루즈벨트 같은 거였군' 제멋대로 동일시하고나니 기분이 좋아진다. 껄껄껄.
맑고 깨끗하고 자신있게! 클린 앤 클리어, 자뻑으로 정신승리합시당(충전).

요즘 자는 중간중간 내가 코를 골고 있는 게 아닐까 자각하게 된다.
실제로 코를 고는지 골지 않는지는 모르겠지만 엄청 코를 골다가 중간에 살짝 깨 '코를 골고 있었나' 잠깐 생각하고서 다시 잠든다.
저장해놓은 체력이 많이 소진됐다는 기분을 몸과 마음으로 느낀다.

체력이 떨어지니 작은 것부터 틀어진다.
책상 앞에 바른 자세로 앉아 있기가 전보다 더 귀찮은게 아예 누운 자세가 돼버기리 일쑤다(허리 업! 껄껄).
누군가 듣기 싫은 소리를 하면 '좀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라는 태도로 허리를 곧게 세우기보다는 '알아 색히야. 나도 부족한 거 아니까 두 번 말하지 말고 좀 닥쳐라' 짜증부터 난다.
한 번 말하면 까먹을 거라 미리 염려하는 분들에게 염려대왕을 보내 똥침을 놔줘야겠다.(여기서 염려대왕은 염라대왕을 이용한 말장난입니다. 재미없는 개그 하고서 못 알아들을까봐 미리 염려하는 나에게는 염려대왕 보내지 말고. 죄송).
운동으로 다시 체력을 보충해야하는데 운동이 왠지 더 피곤하게 만드는 거 아닐까, 하고 하기 싫은 이유부터 만들어낸다. 
이게 다 체력이 떨어져서 그러는 거 아닐까.
자세가 중요하다는 걸 의식하면서도 바로 세우지 못하는 것도, 독방에 갇혀 십오 년 동안 짜장면만 먹은 사람처럼 짜증부터 나는 것도(허 참. 쓰고나니 괜히 짜장면 먹고 싶어지네).

그럼, 더 쓰기 귀찮으니 이만 포스팅을 마무리하자(이것도 체력이 떨어져서 그런 거? 헉).
일단 틈틈이 전자(음악)충전이라도 열심히 해두자.
할 수 있는 것부터 해야지. 껄껄.

메일 답장 보내야하는데 그것도 귀찮네.
체력이 떨어지니 만사 다 버거워.
그래놓고 블로그 포스팅은 하고 있고.
뭔가 앞뒤가 안 맞지만 옆은 맞겠지. 껄껄껄.


비수기의 전문가들 감상

자다가 깨다를 반복하며 <비수기의 전문가들>을 읽었다.
표시하고 싶은 곳이 많아 구석구석 연필로 큰 괄호를 만들어 묶어두었다.

김한민 작가의 책은 세 번째다.
어떠한 인상을 받았는지 지금은 모두 잊어버렸지만 <카페 림보>, <책섬>을 읽은 적이 있다.

<비수기의 전문가들>을 읽으며 표시한 부분을 여기에 모두 적어두자고 작정한 채 로그인했지만
스크롤의 압박이 에베레스트 산 높이보다 길 것 같아 그만둔다(귀찮아서 그런 건 아니고.. 그럴 리가).


모든 인간은 본래 자유롭고 싶다.
한곳에 매어 있지 않으려는 본성이 있다.
우리처럼 모든 게 잘못됐을 때
돌아갈 집이라도 있는 건 엄청난 특권이다.
특권을 가진 자는 못 가진 자를 이해 못 한다.

- <비수기의 전문가들, 김한민>, 136쪽


지금 더 혼란스러운 비수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얼굴이 몇 떠올라 뭐라고 뭐라고 쓰다가 지운다.
나이브한듯 평화로운 분위기에 읽으며 즐거웠던 장면을 하나 기록해둔다.


리스본 지리에 점점 익숙해지면서
파리 날리는 곳들을 섭렵하고 다녔다.
아니 파리조차 날리지 않는 곳들을.
사람들로 붐비지 않는 곳이라면
반드시 한 번은 둘러봤다.
사람들을 끌지 못하는 곳이라면 분명히 뭔가가 있을 터.

사물의 원리를 알고 싶다
세상이 돌아가는 원리 말고
돌아가지 않는 세상들의 원리를.

인생에 몸을 담긴 담그되
자기에게 유리한 쪽으론 여간해서 머리가 안 도는 이들의 머리를
까보고 싶다.

비스뉴 오슈티가 운영하는 네팔 식당에는
앙코르와트 사진이 붙어 있다.
그와 나 외엔 아무도 없는 점심시간
서로 다른 항해를 하다가 난파되어
무인도에서 만난 두 명의 표류자처럼 우리는 대화를 나눈다.

라씨를 주문하면 비싸다고 말린다.
비싼 카레를 주문하면 싼값에 해준다.
손님 돈을 자기 돈처럼 생각하는 주인.
그는 포르투칼어가 서툴다.
말끝마다 습관적으로  'aber'다...

-<비수기의 전문가들, 김한민>, 50쪽


콜콜콜 잡담

이 글은 작업실 마지막날, 미처 가져가지 못한 짐을 챙기러 와 카누를 타마시며 얼렁뚱땅 노트북을 켠 김에 심심해서 적고 있다(<베를린 일기>의 최민석 작가를 따라해본다).

이 공간은 지치고 힘든 시기에 내게 힘을 준 곳이다.
힘을 준 공간이라고 쓰니, 큰 마음을 모아 고맙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들을 수 있다면 소리내 말하고 싶다.
작업실 실장님에게는 두어 번 감사의 마음을 전한 적이 있다.
나가기 전에 한 번 뵙는다는 걸 이번 달에는 출석률이 제로에 가까워 잠깐도 마주치질 못했다.

대로변에 위치한 4층짜리 낡은 건물 (지하는 펑크록 공연장, 1층은 술집, 2층은 타투샵, 3층은 지역 라디오 센터, 4층은 작업실, 건물 내 입주 구성의 조합이 신기했다. 건물 입구 현판에 새긴 기록에 의하면 85년에 지어졌다고 한다).
오래된 창 밖으로 차가 달리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저녁을 맞이한 날도 지금과 비슷한 기분을 느꼈다.
고요하고 편안한.

노트북 하나 덩그러니 남겨진 책상을 보니 진짜 작별이구나 싶다.
다시 또 이곳으로 돌아올지 모를 일이지만.

언젠가 이곳에서 보낸 시간들이 떠오를 것 같다.
그때의 자유와 막막함이 뒤섞인 불안과 안락이 종종 그리울 지도 모른다.
어쩌면 별로 중요한 기억이 아닌 게 되어 금세 잊혀질지도 모르고.

몇 달 전과 지금의 나는 제법 많이 달라진 듯하다.
환경과 몸과 마음이 모두.
환경 이외에는 크게 달라진 게 없을지도 모르지만 큰 간격을 느낀다.
모쪼록 나쁘지도 좋지도 않은 시간을 보내는 중이다(솔직히 말하면 나쁜 게  좀 더 많다).

처음 작업실에 짐을 옮겨놓고 신났던 기억을 떠올리니 좋은 거 하나 없이 나쁘기만 했던 몇 달 전이 부럽기도 하다.
작업실비 아깝다고 틀어박혀 있던 나를 만나러 온 친구들도 떠오른다.
편의점에서 맥주와 과자를 사들고 옥상에서 시간을 보냈다.
예전만큼 옥상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아 친구들은 마음에 들어했다.
다시 또 여기서 시간을 보내자고 약속했는데, 몇 주 후 작업실에 자주 올 수 없는 일상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날은 참 좋았다.
훈련소에 갇혀 있는 것도 아닌데 면회까지 와주고.
물론 자기들이 심심하고 딱히 갈 데가 없어 온 게 분명하지만, 괜히 고마웠다.

자리를 빼던 옆자리 분에게 받은 그림 원화도 구겨지지 않게 오랫동안 보관해아겠다.
짐을 빼던 옆자리 분과 우연히 인사를 하게 돼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벽에 걸어놓은 그림 중에 마음에 드는 걸 하나 고르라고 했다.
꽃이 그려진 그림을 고르니 뭔가 '아 하필 골라도 이걸 고르냐. 내가 가장 아끼는 그림인데' 라는 표정을 지었다.
분위기를 캐치하고선 '아, 다른 거 고를게요' 했더니 '아니에요. 이거 좋다고 하셨잖아요' 말하며 그림에 싸인을 해주셨다. 
몸체만 한 캐리어를 끌고 나가는 뒷모습이 쓸쓸해보였다.
대화 내용에 받은 인상이 더욱 그러한 기분을 느끼게 했다.

그럼, 이곳에 있었던 여섯 달 동안..
아니, 내가 여기에 여섯 달이나 있었단 말이야.
허허허, 아재 같은 소리 하나 해야겠다. 
시간 참 빠르군.

여섯달 동안 한 건 없지만, 괜히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한 게 없다.
작업하려고 들어왔는데 때마침 들어온 알바거리 하다가 시간 보내고
작업 준비에 박차를 가하다 우연한 기회에 지금 하는 일을 시작하게 됐다.
이 일도 이렇게 오래하고 있을지 몰랐다.
남은 인생을 서비스직으로 보내겠다고 다짐하며(서비스직을 좋아하며 언젠간 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이 일이 나와 맞지 않는 걸 확실히 확인해두자' 하고 시작해버린 거니까.

그럼 이만 막차를 타고 집에 가야하기에 이쯤에서 마무리한다(더 쓰기 귀찮아서 그런 거 아니고. 그럴 리가).

짐 싸서 나갈 생각하니 아쉽군.
여기서 보낸 지난 여름 좋았다.
적당히 외롭고 힘들고 즐거웠다.


열일하는 것처럼 보이려고 일부러 일 년 전에 작업한 워드창 켜놓고 찍은 사진이라는 건 비밀.

인디자인 안 켜본지가 벌써 몇 달이냐.
어도비 프로그램 중에 가장 (유일하게) 애정하고 숙련도 상위 레벨이라 자신하는 툴인데.
사진은 책 많이 보는 사람인 척 인테리어한 모습(안 본 책이 더 많다는 건 비밀).

작년에 분홍색 참 좋아했다.
몸 가까운 곳에 분홍색 하나 있어야 스트레스가 풀릴 정도였으니. 껄껄껄.

옆자리 일러스트레이터가 준 원화다.
명함에 적힌 블로그에 들어가봤더니 이곳에서 느낀 외로움과 고민이 기록돼 있었다.

작년 가을에 가장 높은 곳에 올라가 사진을 찍었는데 몇 달이 지난 지금까지 방치 중이다.

1 2 3 4 5 6 7 8 9 10 다음